CC Log 3. 『종로 호스트』 서평

가벼운 기록이 무게를 갖게 되기까지

수집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으고 간직하려는 마음이 여러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왔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 위해 저자가 고민해 온 방법들과 그에 따른 고충을 소개하는 책이다. 장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서재 바닥이 꺼지고 건물이 기울어진 사례가 등장하는가 하면, 헌책방 주인을 불러 책을 처분하려다가도 막상 떠나보내려니 아쉬워 몇 권씩 다시 빼놓는 장서가들의 모습도 나온다.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책을 좀처럼 놓지 못하고 다시 서점을 찾는 모습에서는 수집에 대한 애착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곤란이 동시에 드러난다.

비슷한 이야기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밤의 물고기에 수록된 「헌책 지옥 저택」에서 한층 극단적으로 그려진다. 책 수집가들이 갖고 싶어 했던 절판된 책들이 숨어 있는 헌책으로 이루어진 저택 어딘가에서 원하는 책 한 권을 무리하게 빼내려다 전부 무너져 귀신이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 집 책장 정도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필요한 책 한 권을 찾으려고 방 한구석을 헤집고 있다 보면 적어도 우리 집이 콘크리트 건물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일어난 바닥 빠짐 사건을 보도한 스포츠지 기사 『석간 후지 도쿄판 2005년 2월 8일호. (출처: Magazine Kō)

기록하고 수집한 것을 보관하는 데 따르는 수고는 책장 밖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영상 작업을 할 일이 생기면서 외장하드를 연달아 두 개 샀다. 데이터를 손에 잡히는 물성에 옮겨놓고 나서야 겨우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분실이나 고장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을 놓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사진이나 영상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 한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한 기록인 셈인데, 손쉽게 촬영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된 탓인지, 언제부터인지 찍어두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 채 딱히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촬영하는 순간 데이터의 대열에 섞여 다시 흘러가 버리는 기록에는 좀처럼 애착이 생겨나지 않는다.


『종로 호스트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종로와 그 주변을 아이폰으로 기록한 약 3,000장의 디지털 이미지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어떤 장면을 나란히 놓을지 선별한 뒤, 30개의 장으로 엮어 흩어져 있던 기록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 사진 책이다. 축적된 기록을 관리하고 선별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 가볍게 쌓여가던 데이터는 그와 대조적으로 두껍고 묵직한 704페이지의 양장본으로 옮겨졌다. 펼쳐진 페이지 위에 나란히 놓인 사진들은 더 이상 화면 속에서 끝없이 흘러가는 이미지의 일부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세워 한 장면씩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이 된다.

샘 유킬리스(Sam Youkilis)의 아이폰 사진집 『Somewhere가 특정할 수 없는 ‘어딘가’의 풍경을 떠돌며 세계 곳곳의 장면을 한 권에 담아냈다면, 『종로 호스트는 종로라는 구체적인 장소에 독자를 초대해 그곳을 안내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작가는 지난 9년간 자신이 보고 기록한 종로를 내어주는 호스트가 되고, 독자는 그의 시선을 따라 골목과 거리, 사람들 사이를 거니는 손님이 된다. 언제든 가볍게 꺼내 들 수 있고 때로는 상대에게 크게 의식되지 않은 채 촬영할 수 있는 휴대전화 카메라의 특성 덕분에, 책에는 거창한 풍경보다는 종로를 오가며 마주친 사람과 사물, 골목과 표정 같은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0개 장으로 이어지는 호스트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기록한 종로의 풍경 위로 내가 알고 있던 종로의 기억이 겹치면서, 어느덧 우리가 알고 있는 조금은 낯설고 재미있는 종로의 모습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손에 잡히지 않던 순간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무게를 얻고, 페이지를 넘기며 반복해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데이터로만 남아 있을 때 느껴지던 공허함은 서로 다른 기억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눌 수 있다는 감각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이런 달콤한 만족감 때문에 책장이 조금 휘청이는 수고쯤은 감수하면서도 계속 책을 사들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종로에 놀러 오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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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호스트

『종로호스트』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종로와 그 주변을 아이폰으로 기록한 사진과 텍스트를 엮은 사진책이다. 총 3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 사소한 장면과 감각의 축적을 담고 있다. 특정한 사건을 기록하기보다 오랜 시간 한 장소를 바라보며 쌓여가는 일상의 분위기와 개인적인 시선을 따라간다.

저자: 코젤앤엔츠
출판: 코젤앤엔츠

704p, 103 × 148 mm, 양장 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