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gure in the Carpet》은 헨리 제임스의 단편 소설 「융단 속의 무늬」을 일종의 각주로 사용한 그래픽 노블이다. 《The Figure in the Carpet》의 제작자 이승현은 이 책을 통해, 글과 이미지가 지닌 의미를 ‘해독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책이라는 매체에서 저자와 독자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가치라는 것을 말한다. 책은 언뜻 카펫의 무늬—혹은 다이어그램, 컬러링 밑그림(coloring sheet)—로 보이는 일련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이것의 각주로 보이는 글로 가득 차 있는데, 이승현은 이를 촛불의 심지라고 표현한다. 인화성과 소멸성이 강한 이 연쇄체들은 어떠한 완결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 같지만… 「융단 속의 무늬」는 죽은 소설가의 유작에 담긴 비밀을 밝히고자 카펫 무늬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승현은 의도적으로 미완의 coloring sheet와 「융단 속의 무늬」가 상호작용하도록 배치하여, 독자 스스로 자신의 호기심에 이끌려 채색 노동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독자의 호기심 혹은 욕망—어떤 서사의 결말이나 아름다운 도상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을 담보 삼아, 독자에게 책의 완결을 위임한다. 하지만 책의 정교한 구성과 시각 장치들은 독자가 스스로 미완의 영역을 완성하도록 유혹하는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도록 방해하는 이중적 장치로 작동해,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지시적 속성을 손에 쥔 저자와 은연 중에 그것에 집착하고 순종하는 독자의 관계성을 드러낸다.